소설 리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 소설 리뷰

maksoso 2022. 7. 6. 14:26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 소설 리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 소설 리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 소설 리뷰

너무나 오랜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만났다. 오래전 영적 세계를 다룬 타나토 노트를 통해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고 이어서 천사들의 제국, 신을 읽으며 난 세계관이 확장됨을 느꼈다. 베르나르의 작품을 읽은 이후 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고 그는 언제나 나에게 고마운 작가로 남아있다. 박학다식한 베르나르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찌나 많은 건지 이어서 보게끔 연작 소설 시리즈를 주로 출간하는데 한동안은 다른 책 읽느라 그의 작품을 찾아보지 않았었다. 이번에 출간된 <행성> 역시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고양이> <문명>에 이른 세 번째 연작 소설이었다. 앞서 출간된 두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있었기에 부담 없이 책을 펼쳤다. 사람 못지않게 너무도 아름다운 생명체 암컷 고양이 바스테트를 주인공으로 인류 문명이 멸망한 다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고양이 러버인 나는 그저 읽는 내내 흐뭇해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아직도 인간의 이 행성, 지구의 주인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큰 착각이다. 야옹!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고양이 여신의 이름을 따온 야심찬 고양이 바스테트는 스스로 자멸한 인간 문명의 세계를 뒤이어 점령한 쥐들을 피해 노아의 방주 격인 대형 범선 <마지막 희망>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강력한 쥐약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몇몇 인간들과 개, 돼지, 고양이 무리를 이끌고 한 달여간 바다를 건너왔건만 뉴욕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고, 이곳 역시 쥐들에게 점령당한 이후였다. 피할 수 없는 쥐들과의 대결은 폭력적이고 잔혹했다. 바스테트는 정수리에 달린 제3의 눈을 통해 남은 인간들과 합심하여 상황을 타개해 보려 하지만 인간들은 여전히 위기 앞에서도 자신들끼리 소통할 줄 몰랐다. 하지만 원대한 꿈을 가진 바스테트는 그런 인간들을 포기하지 않고 야옹을 외치며 쥐들에게 물고 뜯기면서도 꿈을 향한 여정을 이어나간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행복보다 불행을 위해 쓴다

바스테트의 눈에 비치는 인간들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 앞에서도 오로지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상대를 반박하고, 남과 다른 점으로 자신을 정의하려고만 하지 공통점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진실이 있고,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믿는 우리 인간들.. (반성해야 해)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인간은 정말 영리한 존재들이기도 하다. 끝없이 증식하는 쥐들을 막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여 쥐의 간과 뇌를 손상시키는 바이러스를 개발하기도 하고, 고양이에게 칩을 인식해 사람과 소통하도록 만든 기술은 여전히 인간에게 희망이 남아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원제는 고양이 행성

2020년 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무렵 집필을 마친 이 소설은 그래서인지 지금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작품 속에 옮겨놓은 듯했다. 환경 문제, 정치 문제, 인종 갈등, 성차별, 광신주의 등 최첨단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전쟁과 테러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렇게 서로 반목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생태계를 계속 파괴하다 보면 결국엔 우리도 쥐가 아니더라도 분노한 다른 동물들이 공격해올지도 모른다. 베르나르는 바스테트의 눈을 통해 이런 우리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었다. 바스테트의 계획은 온전히 성공하지 못했고, 여전히 인간은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생각하는 이들의 편이고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바스테트의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바스테트는 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여전히 쓸 줄은 모른다. 그렇기에 아직 우리에게 시간은 남아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스러운 고양이 라면 기꺼이 인간의 자리를 내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모든 존재는 소중하다는 걸 마음에 새겼다. 모두가 이 마음이라면 지구가 파괴되는 일도 무서운 바이러스가 퍼지는 일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